
📰 1970년대 크메르 루주의 대량 학살을 상징하는 용어가 바로 킬링필드입니다. 45년이 지난 지금도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는 캄보디아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폴 포트 정권은 급진적 농본주의를 내세우며 지식인, 소수민족, 도시 거주민을 무자비하게 처형했습니다. 이념의 광풍이 국가를 집단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연구자들은 1975~1979년 사이 약 170만∼200만명이 희생됐다고 분석합니다.1 이는 당시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며, 아시아 현대사 최악의 비극 중 하나였습니다.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SA 3.0)
‘킬링필드’라는 표현은 미국 기자 시드니 셔버그가 학살 현장을 처음 목격하고 쓴 기사 제목에서 비롯됐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야자수 밭 아래, 해골과 뼈가 드러난 참상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습니다.
대표적 현장인 추엉에크(Choeung Ek)와 뚜얼슬랭(Tuol Sleng) 수용소는 오늘날 역사교육의 장이자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SA 4.0)
유네스코는 2025년 이 유적지를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학살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은 인류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다.”
라는 선정 이유가 강조됐습니다.
캄보디아 특별법원(ECCC)은 2018년 누온 체아· 등 지도부 2명을 집단학살죄로 종신형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가해자가 여전히 처벌받지 않은 채 고령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화해·복원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생존자 구술 아카이브 구축, 농촌 지역 지원 등 공동체 치유에 집중하며 ‘살아 있는 기억’을 보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다크 투어리즘’이 급증했습니다. 📸 SNS에 공유되는 처참한 사진이 교육 효과를 높인다는 긍정적 시각과, 비극의 상업화라는 비판이 상존합니다.
사진: Unsplash (무료 라이선스)
최근 한국 사회가 ‘현대판 킬링필드’라 불리는 캄보디아 감금·납치 사건에 주목하면서, 키워드 ‘킬링필드’ 검색량이 급등했습니다. 과거 학살지와 현재 인신매매 조직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뉴스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전문가들은 여행 안전 수칙으로 ① 공항 픽업 사전 예약 ② 현지 유심 대신 eSIM 사용 ③ 의심 링크·모집 광고 무응답 ④ 대사관 긴급 연락처 상시 저장을 권고합니다.
캄보디아 정부도 국제 공조 수사를 강화하며 “범죄와 역사적 오명을 동시에 지워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경제난·부패가 뿌리 깊어 실효성 논란이 지속됩니다.
‘킬링필드’가 전하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극단적 이념과 정치적 폭력은 언제든 사회를 파괴할 수 있으므로, 시민 감시와 민주주의가 필수 안전장치라는 사실입니다.
캄보디아 교육부는 초·중등 교과서에 학살사를 대폭 확대해 다음 세대가 과거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도 자료 번역·온라인 전시관 제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름 없는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리며 🕯️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억하고 행동하는 일입니다. 킬링필드의 그림자를 직시할 때, 비로소 미래의 참혹한 역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1 자료: 캄보디아 국제연구소, 2025년 인권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