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3월 31일 새벽, 일본항공 351편 DC-8 여객기가 요도호 사건의 무대로 변했습니다.
당시 일본공산주의연맹 적군파 소속 청년 9명이 칼과 폭발물을 들고 기내를 장악했습니다.
하네다→후쿠오카 노선은 1시간 남짓의 단거리였으나, 비행기는 결국 한국 김포공항에 비상착륙했습니다.
납치범들은 “우리를 북한 평양으로 보내라”고 요구했고, 129명의 승객이 공포 속에 인질이 됐습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요도호 사건은 냉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념 대결의 축소판이었습니다.” – 이승열 항공사고 연구위원
한국 정부는 중앙정보부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의 주도로 협상팀을 꾸렸습니다.
납치범들이 요구한 ‘혁명전사 1천만 엔’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중립국 라오스를 통한 안전통로가 대안으로 제시됐습니다.
결국 승객 대부분은 서울→도쿄로 귀환했고, 납치범과 일부 승무원은 ✈️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요도호 사건 이후 일본·한국·국제사회는 항공보안 체계를 전면 재정비했습니다.
1971년 몬트리올 협약, 1973년 ICAO 보안 강령 등은 모두 요도호 사건의 직·간접적 결과였습니다.
납치범 9인 가운데 4명은 2000년대 중국·태국에서 체포돼 일본으로 송환됐고, 3명은 평양 거주 중 사망했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은 지금도 반세기 넘은 이산의 상처를 증언합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최근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가 요도호 납치사건을 모티브로 하면서, 검색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영화는 일부 각색을 거쳤지만, 하이재킹 당시 공포·이념 갈등·협상 드라마를 사실적으로 담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전문가들은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려면 일본항공 351편 원본 기록·재판 자료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 교훈: 정치·사회적 이상이 폭력으로 비틀릴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무고한 시민’이라는 점입니다.
⚖️ 과제: 국제사회는 여전히 항공기 납치, 사이버 하이재킹 등 신종 위협에 대비해야 합니다.
54년이 흐른 지금도 요도호 사건은 “보안과 인권, 체제경쟁”이라는 숙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