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정국 다시 불붙다…나경원 마이크 차단까지, 무엇이 쟁점인가
취재·구성 = 라이브이슈KR 정치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제도)를 둘러싼 여야 충돌이 다시 격화되면서, 한국 정치의 절차 민주주의와 의회 운영 방식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국민의힘이 본회의에 상정된 모든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겠다고 밝히고, 나경원 의원이 첫 주자로 나선 직후 우원식 국회의장이 마이크를 차단하는 초유의 장면까지 연출되면서, 필리버스터 제도 자체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커지고 있습니다.
1. 필리버스터란 무엇인가…한국 국회가 채택한 ‘무제한 토론’ 제도
필리버스터는 본래 미국 상원에서 발전한 제도로,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소수파 의원들이 장시간 연설로 표결을 지연하는 의사 방해 전술에서 출발했습니다.
한국 국회에서는 2012년 국회법 개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도입됐으며,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국회의원이 무제한으로 토론에 나설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다수당의 ‘날치기 처리’를 견제하고, 쟁점 법안에 대한 여론 형성의 시간을 벌어 준다는 점에서 의회민주주의의 안전장치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필리버스터는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니라, 소수 의석을 가진 세력이 국민 앞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최대한 설명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입니다.”*
* 학계와 정치권 일각에서 공통되게 제시해 온 필리버스터 제도의 취지입니다.
2. 왜 지금 다시 ‘필리버스터’인가…가맹사업법·8대 악법 공방
이번 필리버스터 정국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가맹사업법 개정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의 분쟁을 줄이고 본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 법안 자체에는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도, 같은 시기에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등 이른바 8대 악법에 강력 반대한다는 이유로, 본회의에 상정되는 전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강수를 두었습니다.

여당은 이를 두고 “민생 발목잡기이자 민생 쿠데타”라고 비판했고, 야당은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한 마지막 방파제”라고 맞서면서 정치적 긴장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입니다.
3. 나경원 ‘필리버스터’ 첫 주자…10여 분 만에 마이크가 꺼진 이유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전략에서 가장 큰 장면은 단연 나경원 의원의 첫 연설입니다. 나 의원은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단상에 올라, 더불어민주당의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와 ‘입법 독재’, ‘8대 악법’ 등을 거론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우원식 국회의장은 “의제와 무관한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며 여러 차례 경고했고, 국회법 제102조(의제 외 발언 금지)와 제145조(질서 유지)를 근거로 제지를 시도했습니다.

결국 우 의장은 “계속 의제 밖 발언을 하면 마이크를 끌 수 있다”고 경고한 뒤, 유예 시간이 지나자 실제로 마이크 전원을 차단하고 발언권을 박탈했습니다. 이 과정이 생중계되면서, 여야 의원들이 국회의장 단상으로 몰려들어 고성을 주고받는 장면이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달됐습니다.
야당은 “필리버스터마저 막겠다는 것이냐”라며 강력 반발했고, 여당은 “의사진행 방해를 멈추라”고 맞서며, 61년 만에 필리버스터가 중도 중단되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다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4. ‘모든 법안 필리버스터’ 전략…야당이 노리는 정치적 효과
국민의힘이 상정된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배경에는, 단순한 시간 끌기를 넘어 ‘쟁점 법안 패키지’를 국민 앞에서 부각시키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야당은 특히 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을 “정권 보복과 정치 재판을 제도화하려는 악법”으로 규정하며, 필리버스터를 통해 각 법안의 문제점을 일일이 설명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야당 입장에서는 필리버스터를 통해 지지층 결집과 언론 노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입법 독주 프레임’을 강화하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5. 여당의 반격…‘필리버스터 제한법’과 절차 민주주의 논쟁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필리버스터 제한법까지 검토해 왔습니다. 국회법상 무제한 토론을 유지할 수 있는 요건을 강화해, 사실상 필리버스터를 쉽게 열지도 못하고 길게 유지하지도 못하게 하는 내용이 논의됐습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자, 여당은 해당 법안을 당장은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절차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 야당은 “소수파의 합법적 저항 수단인 필리버스터를 제도적으로 봉쇄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합니다.
- 여당은 “필리버스터 남용으로 민생 법안이 줄줄이 발목 잡히고 있다”고 맞서며, 일정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6. ‘의제 외 발언’과 ‘의사진행 방해’ 사이…국회의장의 재량은 어디까지인가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도중 마이크를 끌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국회법은 의제 외 발언 금지(제102조)와 질서 유지를 위한 제재(제145조)를 규정하고 있어, 국회의장은 회의 질서를 위해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원식 의장은 이러한 조항을 근거로 “의도적인 의사진행 방해”라고 판단해 나 의원의 발언을 차단했다는 입장입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의 본질은 광범위한 정치적 발언에 있으며, 의제와 직간접으로 연결된다면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필리버스터에서 의제 외 발언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는 단순한 회의 운영 문제가 아니라, 국회 다수파가 소수파의 입을 얼마만큼 허용할 것인가라는 민주주의 원리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국회의장의 재량 범위와 필리버스터의 표현 자유 사이의 경계는 앞으로도 반복해서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7. 과거 한국 정치의 필리버스터 사례와 이번 사태의 차이점
한국 정치에서 필리버스터가 크게 주목받았던 대표적 사례는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였습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이 무려 193시간 넘게 릴레이 연설을 이어가며 국민적 관심을 끌어냈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그때와 달리, 쟁점 법안 패키지에 대한 전면 저지 전략이라는 점, 그리고 국회의장이 무제한 토론을 도중에 끊는 강경 조치까지 나왔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릅니다. 또한 여야 모두 정기국회 막판까지 강경 기조를 유지하면서, 비쟁점 민생 법안 처리까지 줄줄이 지연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8. 유권자가 알아둘 핵심 포인트 3가지
이번 필리버스터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 유권자가 짚어볼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필리버스터는 합법적 제도이지만, 남용될 경우 민생 법안 처리 지연 등 부작용이 큽니다.
- 국회의장의 의제 외 발언 판단과 마이크 차단은, 소수 의견 보호와 회의 효율성 사이의 균형 문제와 직결됩니다.
- 여야가 서로를 “입법 독재”, “민생 쿠데타”라고 규정하는 극단적 언어 경쟁 속에서, 실제 법안 내용과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차분히 살펴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9. 앞으로의 시나리오…필리버스터와 타협, 어느 쪽으로 갈까
국회 안팎에서는 이번 필리버스터 정국이 몇 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타협 시나리오: 여야가 쟁점 법안 일부를 유보하거나 수정하는 대신,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비쟁점 민생 법안부터 처리하는 절충안을 찾는 방식입니다.
- 강대강 시나리오: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고, 여당이 재적 3/5 이상 동의를 통한 ‘무제한 토론 종료’ 및 회기 쪼개기 등을 동원해 법안을 관철하려 하는 경우입니다.
- 제도 개편 시나리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필리버스터 요건과 절차, 의장 권한 전반을 손보는 국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필리버스터가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로 남을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 공방의 도구로 전락할지는 여야 모두의 책임 있는 선택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0. ‘필리버스터 정치’가 남긴 질문…소통과 책임의 시험대
이번 필리버스터 파동은 한국 정치에 몇 가지 뼈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첫째, 다수당의 입법 속도와 소수당의 견제 수단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정당한 정치 싸움인지, 둘째, 국회의장이 어느 지점에서 중립적 조정자에서 정치 행위자로 평가받게 되는지, 셋째, 무엇보다도 이런 소모적인 충돌 속에서 민생 현안과 경제 위기에 대한 국회의 실질적 대응은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라이브이슈KR’은 앞으로도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여야의 움직임, 필리버스터 제한법 논의, 가맹사업법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등 쟁점 법안의 실제 내용까지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할 예정입니다.
정치 공방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시민입니다. 독자가 스스로 법안의 실질 내용과 필리버스터의 정치적 효과를 가늠할 수 있도록, 차분하고 입체적인 정보 제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