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70년대 명곡 ‘봄비’의 주인공이자 한국 최초의 소울 가수로 꼽히는 박인수가 18일 새벽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8세였습니다.
고인은 평안북도 길주에서 태어나 전쟁통 고아가 된 뒤 미군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입양돼 뉴욕 할렘가에서 흑인 음악을 체험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소울(Soul)․펑크(Funk) 장르를 한국 대중음악에 접목하는 결정적 밑거름이었습니다.
사진=조선일보·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1960년대 귀국한 그는 미8군 클럽 무대에서 미국 소울 넘버를 현지 발음 그대로 소화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신중현 사단에 합류해 ‘퀘션스’ 객원 보컬로 활동하며 독보적 샤우트 창법을 완성했습니다.
특히 1970년 발표된 ‘봄비’는 쥐어짜는 듯한 허스키 보이스와 소울풀한 페이크 기법으로 국내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발매 3주 만에 음반 20만 장을 돌파하며 당시로선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박인수의 음색은 흑인 영가와 한국적 한(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빚어진 독보적 자산이었다.” –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그러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수차례의 시련도 있었습니다. 2002년 췌장암 수술, 이후 알츠하이머·파킨슨병을 연이어 앓으며 무대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럼에도 2010년대 중반 다시금 라이브 재즈 바에 올라 팬들과 호흡해 ‘영원한 소울맨’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소울은 영혼의 외침이며, 국적을 뛰어넘는 진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라이브는 흑인 교회 특유의 콜 앤 리스폰스와 한국 판소리의 시김새를 결합해 학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진=경향신문·연합뉴스
국내·외 음악학자들은 그를 ‘K-Soul’의 뼈대를 구축한 인물로 꼽습니다. 2017년 미국 스미소니언 재즈 연구소 초청 강연에서 그는 “K-팝의 세계화는 이미 70년대 우리 세대가 씨앗을 뿌린 결과”라며 후배들에게 열린 시각을 당부했습니다.
이번 별세로 가요계는 원로 소울 보컬 계보의 가장 굵직한 줄기를 잃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봄비’가 꾸준히 리메이크되고, 뮤지션들이 그의 보컬 테크닉을 연구하는 한 박인수라는 이름은 계속 살아 있을 것”이라 전망합니다.
현재 빈소는 서울 A대학병원 장례식장 특실 2호에 마련돼 있습니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 장지는 벽제 승화원입니다.
유족 측은 “고인은 마지막까지 팬 사랑을 이야기했다”며 “조화 대신 치매 환자 지원단체에 기부해 달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공로상 추서를 검토 중입니다. 음악계는 고인의 음악과 삶을 기리기 위한 추모 콘서트를 내달 준비하고 있습니다.
🎵 독자 여러분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봄비’ ‘떠나야 할 그 사람’ ‘리틀 드러머 보이’ 등을 다시 감상하며 고인을 추모할 수 있습니다. 그 울림은 여전히 우리 가슴에 촉촉한 봄비처럼 내려앉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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