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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두희’라는 이름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며 논쟁적인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1️⃣ 출생과 군 경력입니다. 안두희는 1917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2️⃣ 1949년 6월 26일, 그는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습니다. 이 사건은 해방 정국의 최대 충격으로 기록됐습니다.


3️⃣ 암살 동기를 둘러싼 설은 여전히 분분합니다. 군 내부 지시설, 미군정 개입설, 개인적 정치 신념 등 여러 가설이 공존합니다.

4️⃣ 1차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곧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이후 수차례 감형과 특사로 1960년대 초 석방됐습니다.


5️⃣ 출소 후 안두희는 ‘이재원’, ‘이형택’ 등 가명을 사용하며 인천부산 등지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책임을 묻는 추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6️⃣ 1996년 10월 23일, 박기서(당시 49세)가 인천 자택에서 ‘정의봉’으로 안두희를 급습해 사망케 했습니다. 이른바 ‘안두희 격살 사건’입니다.

“백범을 쏜 총알을 역사 앞에 되돌려줬을 뿐이다.” ― 박기서(1996년 10월 25일 현장검증 中)


7️⃣ 박기서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탄원 110만 명의 여론 속에 4년으로 감형됐고 1999년 가석방됐습니다.

8️⃣ 박기서 생전 사진
▲ 사진=오마이뉴스 제공

9️⃣ 2025년 7월 10일, ‘21세기 독립군’이라 불리던 박기서 선생이 78세로 별세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며 ‘안두희’ 키워드가 다시 급상승했습니다.


🔟 역사적·법적 쟁점입니다. 안두희의 배후·공모 여부는 공식적으로 규명되지 않았고, 관련 기록 상당수가 비밀 해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1️⃣ 학계는 안두희 사건을 통해 ‘이승만 정권 초기 권력구조’, ‘냉전 초기 한미 관계’를 재조명합니다.


12️⃣ 현장검증 화면
▲ 사진=KBS 보도화면 갈무리

13️⃣ 최근 국가기록원국방부는 1949년 군사재판 속기록·수사기록을 디지털화해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안두희 파일’이라 부릅니다.

14️⃣ 한편 교과서·드라마·다큐멘터리 등 대중문화에서도 안두희와 김구 암살 사건은 끊임없이 재해석됩니다. OTT 플랫폼 역시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 중입니다.


15️⃣ 결론적으로 ‘안두희’ 키워드는 한국 현대사 정의·화해·기억 논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번 박기서 선생 별세를 계기로 ‘백범 정신’과 ‘역사적 책임’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