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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키 해튼이 14일(현지 시각) 맨체스터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향년 46세로, 세계 복싱계를 뒤흔든 ‘히트맨(Hitman)’의 갑작스런 부고에 전 세계 팬들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리키 해튼 현역 시절이미지=조선비즈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나 범죄 정황은 없다”고 밝혔으며, 정확한 사인은 부검 후 발표될 예정입니다. 복귀전을 준비하던 리키 해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더욱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리키 해튼은 1997년 프로 데뷔 후 라이트웨터급·웰터급을 제패하며 IBF·WBA·WBC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습니다. 통산 전적 48승(43KO) 3패를 남기며 영국 복싱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맨체스터 출신인 그는 지역 노동계층의 아들로 태어나 “에티하드 스타디움이 보이는 체육관”에서 꿈을 키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맨체스터 시티의 열렬한 팬이었던 사실도 유명했습니다.

파퀴아오전 장면이미지=AP/뉴시스

2005년 코스티아 츠주를 11라운드 TKO로 꺾은 경기는 영국 복싱 역사상 최고의 밤으로 꼽힙니다. 이 승리로 그는 단숨에 파운드 포 파운드 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2007년에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의 ‘무패 맞대결’로 180만 PPV를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10라운드 TKO 패배를 당했지만, 리키 해튼 특유의 인파이터 스타일은 전 세계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2009년 매니 파퀴아오전 2라운드 KO였습니다. 당시 링 위에 고꾸라진 모습은 그의 커리어에 뚜렷한 전환점을 남겼습니다.

리키 해튼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맨체스터의 정신을 보여줬다.” – 타이슨 퓨리

하지만 화려한 영광 뒤엔 우울증·약물 의존·재정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습니다. 2012년 잠시 복귀했으나 재기전에 실패했고, 이후 트레이너와 해설위원으로 새 길을 모색했습니다.

지난 7월, 두바이 복귀전 계획을 발표하며 “마지막으로 팬들 앞에서 춤추고 싶다”고 말했으나, 그 약속은 영원히 미완으로 남게 됐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맨체스터 시티 구단은 홈페이지 메인을 검은색 배경으로 교체하며 추모 영상을 게재했습니다. 복싱 전설 레너드·델라호야 등도 SNS에 “Ring forever blue”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영국 복싱협회는 다음 주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 전 경기 시작 전 10카운트 추모 세리머니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팬들은 #RIP_RickyHatton 해시태그로 그의 투혼과 따뜻한 인성을 기리고 있습니다.

리키 해튼 추모 포스터이미지=Gazeta Express

장례식은 가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며, 추후 맨체스터 대성당에서 공식 추모식이 거행됩니다. 리키 해튼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용기·열정·근성은 링 위와 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